어쩔수가없다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생존본능)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살면서 단 한 번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30대 중반 회사원으로서, 조직의 결정 하나로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완전히 떨쳐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쩔수가없다 리뷰 - 구조조정, 당신이라면 버틸 수 있었을까요

영화의 시작은 단순합니다. 25년 경력의 제지업계 베테랑 유만수(이병헌)가 어느 날 회사로부터 한 문장을 듣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란 기업이 비용 절감이나 효율 향상을 이유로 인력이나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을 숫자로 보고 잘라내는 결정입니다. 만수는 그 숫자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만수가 그냥 불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무능하지도, 문제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대체 가능한 인력(replaceable workforce)이었던 것입니다. 대체 가능한 인력이란 특정 개인의 역량보다 직무 자체가 우선시될 때 쓰는 말로, 노동시장에서 누군가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하는 구조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1년 넘는 취업 실패, 마트 일, 반복되는 면접 탈락.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저 역시 언제든 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비자발적 퇴직 이후 재취업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1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통계청). 만수의 1년은 드라마적 과장이 아니라 현실에 가까운 숫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수가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이미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 이 인식이 영화의 첫 번째 균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 깨달음이 분노가 아닌 계획으로 이어진다면, 그걸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자기합리화, 평범한 사람이 괴물이 되는 과정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폭력이 아닙니다. 만수가 스스로를 설득해가는 과정입니다. 자기합리화(self-rationalization)란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내는 심리 기제를 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명과 다릅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 이유가 진짜라고 믿게 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험합니다.

만수의 경쟁자들은 단순한 악인이 아닙니다. 구범모(이성민)는 같은 처지의 해고자이고, 고시조(차승원)는 동일한 기회를 노리는 인물이며, 최선출(박희순)은 단지 그 자리에 먼저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만수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자, 동시에 "만수를 밀어낸 구조"를 상징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좀 멈칫했습니다. 경쟁자가 악당이 아니라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설정, 생각보다 훨씬 더 불편하게 다가왔거든요.

사회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제로섬 경쟁(zero-sum competition)이라고 부릅니다. 제로섬 경쟁이란 한 사람이 얻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는 잃어야 하는 구조로, 총량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 양상을 말합니다. 노동시장, 특히 중장년층의 재취업 시장이 바로 이 구조에 가깝습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지원자는 넘쳐나며, 결국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내게 됩니다.

만수의 변화를 시간 순서로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1. 초반: "3개월 안에 재취업하겠다"는 의지와 희망
  2. 중반: 반복된 실패 이후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합리화 시작
  3. 후반: 논리와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는 계산된 선택
  4. 결말: 일을 되찾지만, 이미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

제가 이 흐름에서 가장 오래 멈춘 건 두 번째 단계였습니다. 체념이 합리화로 바뀌는 그 지점. 저도 오래 버티다 지치면 "이 정도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이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아주 천천히 보여줍니다.

생존본능,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만수는 결국 자리를 얻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공장과 기계와 반복 노동 앞에 선 그는 처음의 그가 아닙니다. 이걸 두고 일종의 환지통(phantom limb pain)같은 상태라고 표현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환지통이란 이미 없어진 신체 부위에서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현상으로, 여기서는 과거의 삶을 반복하는 형식은 남아 있지만 그 안의 본질, 즉 이전의 가치관이나 인간성은 사라진 상태를 비유합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란 비극적이거나 어두운 주제를 유머와 풍자의 방식으로 다루는 장르를 뜻합니다. 하지만 <어쩔수가없다>는 웃음 뒤에 질문을 심어놓습니다. 구조가 사람을 바꾸는 건가, 아니면 사람 안에 원래 그 가능성이 있었던 건가.

저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구조의 문제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시각이 유효하다고 봅니다. 선택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기보다,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환경을 함께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요. 다만 극단적인 전개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드는 동시에 현실과의 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점은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퇴직자의 상당수가 재취업 과정에서 심각한 자존감 저하와 가족 갈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만수가 겪는 일은 영화적 과장이 섞여 있지만, 그 아래에 깔린 감정의 결은 실제입니다. 저는 그 결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만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상황이라면 나는 다를 수 있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남는 과정에서 무엇을 잃는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직접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웃고 나서 씁쓸해지는 그 감각이, 아마 오래 남을 겁니다.

--- 참고: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ssc=tab.nx.all&query=%EC%96%B4%EC%A9%94%EC%88%98%EA%B0%80%EC%97%86%EB%8B%A4&oquery=%ED%9C%B4%EB%AF%BC%ED%8A%B8+%EB%82%98%EB%AC%B4%EC%9C%84%ED%82%A4&tqi=jP4JcdqXKZGssmZzlSw-238903&ackey=42h4c7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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