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줄거리, 사적복수, 법치주의)

 

모범택시 포스터

솔직히 저는 처음에 모범택시를 그냥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액션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계속 뭔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통쾌하긴 한데, 그 통쾌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법이 실제로 어디까지 작동하는지를 계속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 택시를 타면 복수가 시작된다

겉으로는 평범한 택시회사처럼 보이는 무지개 운수. 하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콜 서비스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서비스가 이루어집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의뢰를 넣으면, 전직 특수부대 출신 택시기사 김도기가 팀과 함께 가해자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질렀던 방식 그대로를 되돌려주는 구조입니다.

이 드라마는 옴니버스 형식(Omnibus Format)에 가깝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이란 독립된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연결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피해자와 가해자가 등장하고, 복수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학교폭력, 직장 내 갑질, 성범죄, 보이스피싱까지, 현실에서 실제로 뉴스에 나왔을 법한 사건들이 소재로 쓰입니다. 제가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픽션인데 전혀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 어디서 실제로 있었던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김도기 역의 이제훈은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로 변장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연기합니다. 단순한 액션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를 매번 새로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검사 강하나 역의 이솜은 법의 방식으로만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로, 도기와 계속 충돌합니다. 이 둘의 관계가 드라마의 긴장감을 이끄는 핵심 축입니다.

사적복수 – 통쾌한데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일반적으로 복수극은 보고 나면 속이 뻥 뚫린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게 절반만 맞았습니다. 분명히 통쾌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을 그대로 되돌려 받는 순간, 피해자가 처음으로 웃는 장면. 그런데 보고 나서도 뭔가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사적복수(私的復讐)란 국가 공권력이나 사법 기관을 거치지 않고 피해자 혹은 제3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응징을 가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법이 처벌하지 못한 사람을 누군가 대신 처벌했을 때,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느냐는 거죠.

제가 실제로 이 부분에서 생각이 멈췄습니다.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가해자, 형량이 너무 가벼워 피해자 가족이 법원 앞에서 무너지는 뉴스를 우리는 실제로 봐왔습니다.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드라마를 보면, 무지개 운수의 행동이 마냥 나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교묘한 지점입니다.

무지개 운수의 복수 방식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팀 기반 구조입니다. 대표 장성철, 해커 안고은, 기술 담당 듀오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복수를 설계합니다. 개인의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조직적 응징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가 시청자로 하여금 사적복수를 정의 실현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법치주의 – 법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믿음에 대한 의문

저는 사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무지개 운수 같은 조직이 생겨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제시하는 사건들을 하나씩 보다 보니 그게 너무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법치주의(法治主義, Rule of Law)란 국가 권력이 법에 의해서만 행사되어야 하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이것은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토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체감하는 법의 작동 방식은 그 원칙과 늘 일치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기 어렵고, 처벌이 되더라도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법무부 범죄통계에 따르면 성범죄나 폭력 사건의 기소율과 유죄 선고율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가해자가 법정에 서더라도 피해자가 원했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모범택시는 바로 이 간극을 소재로 삼습니다.

드라마에서 검사 강하나의 존재는 그래서 단순한 대립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녀는 법의 방식이 느리고 불완전하더라도, 그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지킵니다. 도기와 강하나의 충돌은 결국 "불완전한 시스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의 충돌입니다. 드라마는 어느 쪽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하고, 동시에 더 솔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래는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공감한 주요 이유들입니다.

  1. 현실에서 실제로 보도된 사건들과 유사한 에피소드 소재가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2. 법적 처벌이 충분하지 않다는 대중의 누적된 불신이 사적복수 서사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졌습니다.
  3. 피해자 중심의 서사 구조가 기존 범죄 드라마와 차별화되었습니다.
  4. 팀 기반의 조직적 복수 방식이 감정적 보복이 아닌 정의 실현처럼 느껴지게 설계되었습니다.

드라마가 남긴 질문 – 정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모범택시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정의라고 할 수 있나"가 아니라 "왜 이게 정의처럼 느껴질까"였습니다. 그게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란 가해자가 저지른 행동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법 체계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그 원리가 온전히 실현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정의를 찾게 됩니다. 무지개 운수의 방식은 바로 그 감정적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적복수는 감정적이고 무질서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반대로 철저하게 계획되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제가 보기에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영리한 설계입니다. 무지개 운수의 복수는 단순히 가해자를 해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행동을 그대로 되돌려 줌으로써 피해자의 상처를 인정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사적복수를 전면적으로 옹호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강하나의 시선을 통해 계속 균형을 잡으려 합니다. 도기가 옳다, 아니면 강하나가 옳다, 이분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물로 끝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보고 나서 뭔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진짜 좋은 드라마입니다. 모범택시는 그런 드라마입니다(출처: SBS 모범택시 공식 페이지).

모범택시는 보고 나서 속이 시원한 드라마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시원함이 무엇에서 오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훨씬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단순히 액션 드라마로 접근하기보다, 법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함께 품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보면 강하나의 대사 하나, 도기의 눈빛 하나가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 참고: https://programs.sbs.co.kr/drama/taxidriver3/about/87982 https://www.moj.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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