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연민과 존중, 버티는 삶)

 


솔직히 처음에 제목만 보고 가볍게 여겼습니다. '아저씨'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있잖습니까. 딱히 이성적인 매력도 없고, 굳이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그 묘한 거리감.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했더니, 첫 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보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작품입니다.

키다리 아저씨, 현실판이 있다면 이런 모습 아닐까

제가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란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후원하고, 상대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존재를 뜻합니다.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한 것이 정확히 그겁니다. 직접 손을 뻗어서 끌어올려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줬습니다.

이런 관계를 드라마 이론에서는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라고 표현합니다. 정서적 지지란 공감과 경청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망을 형성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동훈이 지안에게 건넨 것이 돈도, 조언도 아닌 이 정서적 지지였다는 게 저는 인상 깊었습니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그런 어른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어른들은 많았는데, 진짜 내 편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딱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안이 처음에 동훈을 경계하는 장면이 유독 와 닿았습니다. 세상 모든 어른을 불신하도록 훈련된 사람이 진심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그 속도감, 너무 현실적이었습니다.

동훈 같은 어른이 주변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저도 잠깐 했습니다. 아마 그만큼 제 20대가 팍팍했다는 뜻이겠지요. 이 드라마를 보며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얼마나 보편적인 외로움을 건드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연민과 존중, 둘은 다릅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한 위로물과 다른 이유를 짚어보면, 결국 이 지점으로 수렴됩니다. 박동훈은 이지안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연민(憐憫)이란 상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감정으로, 자칫하면 시선의 높낮이를 만들어 버립니다. 내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가여워하는 구조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동훈이 지안에게 건네는 건 그게 아닙니다.

그는 지안이 얼마나 버텨왔는지를 알아봅니다. 이걸 드라마 내러티브 구조에서는 상호인식(mutual recogni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상호인식이란 두 인물이 서로의 존재를 동등한 무게로 받아들이며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방식을 뜻합니다. 동훈도 지안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이고, 그 점에서 이 둘은 대등합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봤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관계를 연장선상에서 낭만화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중년 남성과 20대 여성의 관계를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비판이죠. 그런데 실제로 드라마를 보면, 동훈은 지안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변화시키려 들지 않습니다. 그 절제가 이 작품을 미화로 빠지지 않게 붙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두 인물의 관계를 이끄는 핵심 요소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일방적인 구원 구조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쌍방향 관계
  2.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안전감을 주는 정서적 지지
  3. 상대의 삶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
  4. 연민이 아닌 존중으로 쌓아 올린 신뢰의 시간

이 네 가지가 쌓여서 지안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는 현실에서도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딱 한 명이라도 이런 시선을 가진 어른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의 20대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버티는 삶을 보여주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 드라마는 서사 전개 방식(narrative pacing)에서도 독특합니다. 서사 전개 방식이란 이야기가 어떤 속도와 순서로 사건과 감정을 배열하는지를 뜻합니다. 나의 아저씨는 느립니다. 의도적으로 느립니다. 폭발적인 장면보다 아무 말 없이 같이 걷는 장면, 밥 한 끼를 나누는 장면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정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노리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해소되며 정서적 해방감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걸 일부러 피합니다. 감정이 폭발하는 대신 천천히 스며들고, 그래서 보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도록 잔상이 남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중반부를 지나면서 그 느린 호흡이 오히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현실이 그렇잖습니까.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고, 상처는 하루아침에 낫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 방향성에 정확히 맞춰져 있습니다. 이선균의 박동훈은 말보다 표정으로, 아이유의 이지안은 몸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특히 이지안이 조금씩 경계를 푸는 과정을 아이유가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표현하는 장면들은, 제가 직접 보면서도 이게 연기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 설계와 배우의 연기가 이렇게 일체감 있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영화진흥위원회나 방송 평가 기관의 공식 데이터보다, 실제로 본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설명력이 있습니다. 방영 당시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고 재시청되는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 드라마의 진짜 무게를 말해 줍니다. 또한 드라마의 감정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공감 기반 서사 구조는 시청자의 정서 회복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동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말 대신 존재로 위로하고, 상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본 것만으로도 그 방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는 것, 그게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너무 많은 정보 없이 그냥 첫 화부터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설명보다 직접 느끼는 게 훨씬 낫습니다.

--- 참고: https://tvn.cjenm.com/ko/mymister/